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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썼던 "고양시갑 수수께끼"와 "3파전 수수께끼"에서 이어지는 글.
내가 왜 이번 총선의 일부 개표결과에 대해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졌는가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부분들과 댓글로 의견을 교환했던 부분 등을 차분히 한번 따져 보았다.
살펴 보았던 다른 선거구에서도 경향성은 유사하므로(본투표와 비교할 할 때 사전투표에서 특정 정당에 몰표가 쏟아지는 양상), 일단은 "보수 지지층의 사전투표 이탈로 본투표와의 지지율 격차가 발생했다"는 가설을 살펴보기 위해 골랐었던 경기도 고양시갑 선거구로 생각의 범위를 한정했다.
[ 상황1 ]
유권자가 2만명인 어떤 가상의 선거구에서 투표를 했는데, 사전투표에 10명이 참가했고 본투표에 1만명이 참가했다. 사전투표의 득표율 분포와 본투표의 득표율 분포는 비슷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완전히 달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사전투표 인원이 너무 적어서 2만명의 지지율 분포와 유사성은 커녕 아예 다른 양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 반면에 본투표 1만명의 지지율 분포는 해당 선거구의 지지율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 상황2 ]
유권자가 2만명인 어떤 가상의 선거구에서 투표를 했는데, 사전투표에 3천명이 참가했고 본투표에 7천명이 참가했다. 사전투표에 참가한 3천명은 2만명의 지지율 분포를 반영하는가? 마찬가지로 본투표에 참가한 7천명은 2만명의 지지율 분포를 반영하는가?
나는 이런 경우에 집단의 크기가 충분히 크므로(총 2만명의 부분집합으로 3천명, 7천명이 투표했으므로) 사전투표 - 본투표의 지지율 분포가 상당히 비슷하고, 이 분포가 2만명 유권자의 지지율을 반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가 왜 이러한 예상을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래와 같은 전제조건이 있다.
전제1.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의 3일 동안 유권자 대다수의 지지 성향을 급격히 변화시킬 만한 사건이 없다.
전제2. 특정 조건에 속하는 대규모 인원이 특정한 지령/권고 등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일률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일정/선택에 따라 사전에 또는 당일에 투표했다.
[ 상황2에 대한 고찰 ]
전제1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대통령 지지율이나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웬만큼 큰 사건이 나지 않으면 1주일 사이에 비율 격차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2천명이 안되는 표본임에도 지지율 변화는 매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주일만에 5% 변해도 상당히 큰 수치이고, 3일만에 10% 격차를 만들려면 뭔가 엄청난 뉴스가 터졌어야 할 것이다.
전제2의 경우, "보수 유튜버들의 주장을 믿고 보수 지지층 상당수가 사전투표에서 이탈했다"는 가설을 적용하면 유효성이 약화된다. 그리고, 양자대결 구도는 이 가설로도 설명이 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3자 구도에서 이러한 이탈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3자 구도 선거구의 통합당 지지자들만 다같이 보수 유튜버들의 주장을 무시하기로 약속했을 리는 없으므로, 3자 구도인 선거구에서도 당연히 통합당 지지자들의 사전투표 이탈이 벌어질 것이다. 3개의 집단중 1개 집단이 대거 이탈할 경우, 사전투표 득표율 측면에서는 나머지 2개 집단이 반사이익을 얻게 되어 둘 다 득표율이 올라가야 한다.
[ 경기도 고양시갑 선거구 ]
이전 게시물(3파전 수수께끼)에서 이미 제시했던 경기도 고양시갑의 관내사전투표/본투표 격차를 다시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주교동: 민주당 6.975%, 통합당 -11.471%, 정의당 4.529%
원신동: 민주당 6.711%, 통합당 -7.047%, 정의당 0.378%
흥도동: 민주당 6.345%, 통합당 -7.249%, 정의당 0.928%
성사1동: 민주당 9.463%, 통합당 -8.072%, 정의당 -1.364%
성사2동: 민주당 7.533%, 통합당 -8.250%, 정의당 0.797%
고양동: 민주당 8.969%, 통합당 -8.829%, 정의당 -0.120%
관산동: 민주당 9.468%, 통합당 -9.398%, 정의당 -0.023%
화정1동: 민주당 7.942%, 통합당 -9.741%, 정의당 1.813%
화정2동: 민주당 10.874%, 통합당 -9.756%, 정의당 -1.098%
관내사전투표에서 민주당/통합당/정의당이 득표한 총합은 37394표이고, 동별로는 가장 투표수가 작은 원신동이 2384표로 모든 동의 관내사전투표 투표자수가 2천명~8천명 사이에 있다. 당일 본투표에서 민주당/통합당/정의당이 득표한 총합은 90121표이고, 동별로는 가장 투표수가 작은 성사2동이 3948표로 모든 동의 당일투표 투표자수가 3천명~1만8천명 사이에 있다. 각 동별 유권자수는 가장 적은 곳이 주교동으로 13426명이고, 모든 동이 1만3천명~3만2천명 사이에 있다. 전반적으로 투표수는 실제 지지율 분포를 반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커 보인다. 각 동별 구체적인 값은 이전 게시물의 스프레드시트 또는 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info.nec.g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일부 투표자가 굳이 자신이 거주하는 동에서 투표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서 투표를 함으로써 통계가 뒤죽박죽이 되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이동한 사람이 적다면 당연히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고, 많다고 해도 무작위성 때문에 동별 결과를 다 같이 특정 방향(통합당에서만 -7~-10%의 격차 발생)으로 유도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집 근처 투표소를 놔두고 다른 동에 가서 투표를 한 사람도 있긴 했겠지만, 동별 분포를 다 무너뜨릴 정도로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동별이 아니라 선거구 전체 관점에서도 경향성은 동별 분포와 같은 방향이다. 모든 동에서 같은 방향으로 경향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민주당 +, 통합당 -, 정의당 변화 최소).
그러므로, 보수 지지층의 사전투표 대거 이탈로 인하여 득표율 격차가 발생했다는 가설로는 고양시갑 선거구의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사전투표에서 보수 지지층의 이탈로 인한 득표율 반사이익이 민주당에게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특정 계층의 이탈을 가지고 설명하려면 보수의 이탈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만 유독 사전투표에 대거 몰리게 만든 어떠한 원인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이 원인은 정의당 지지층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종류여야 할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사전투표 조작 음모이론을 100% 무시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고양시갑 선거구에 "관내사전투표에서 통합당표 4장중 1장이 민주당표로 잘못 계산되었다"는 정도의 가정을 적용해서 해당 표를 다시 민주당에서 통합당으로 옮기고 격차를 계산해 보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 그럴듯한 양상으로 바뀐다. 음모이론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인가 -_-;
위에 설명한 생각의 흐름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다른 전제를 가지고 설명을 시도해 볼 수도 있겠는데, 고양시갑 선거구에서 애초에 사전투표 집단과 당일투표 집단이 서로 다른 통계적 성질의 집단이었다는 명제다. 즉, 개인 각자의 일정이나 임의적 선택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사전투표/당일투표 집단이 나뉘어진 것 외에, 민주당에 대한 지지성향과 밀접하게 연관된 어떠한 원인/영향에 의해 사전투표/당일투표 집단이 통계 분포에서 크게는 10% 가까운 지지율 격차를 만들어낼 정도로 - 선거구내 전지역에 걸쳐서 - 큰 규모로 편향되어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것도 정의당 지지층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종류의 원인/영향이어야 할 것이다.
위에 제시한 조건에 부합하는 변수들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으나, 당장 내가 아는 것 내지는 상상으로라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보니 딱히 확신이 들지 않는 측면도 있는 듯.
궁금증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못하다 보니 결론도 없는 얘기를 그냥 생각나는대로 주저리 주저리 쓰게 되었다.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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