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19264 (2018.9.5)
원문 기사는 여기로
2017년 5월에 게재된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다. 얼마전부터 베네수엘라의 몰락에 관심이 가서 관련 기사들을 보는 중인데, 이전에 정리했던 내용에 없는 새로운 내용이 있어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본다.
이전에 정리했던 기사는 아래와 같다.
베네수엘라 - 위기의 경제, 떠나는 사람들 (BBC뉴스)
베네수엘라가 사회주의 국가인 6가지 이유 (대기원시보)
이번에 정리하는 것까지 합하면,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했던 산유국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가게 되었는지 대략의 큰 그림은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돈은 부족하고 빚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정부는 식량 수입을 대폭 감축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국내의 농부들에겐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경제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다르다. 수퍼마켓의 진열대는 비어 있고 굶주림이 창궐하고 있지만 농장의 생산량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Caracas) 주변의 시골을 돌아다녀 보면 농부가 필요한 것은 모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옥한 땅, 물, 햇빛, 세계에서 가장 싼 휘발유(1갤런에 고작 4센트). 그런데 농장의 주민들도 도시인들과 마찬가지로 바짝 마른 앙상한 몰골이다.
수년간 주류 경제학을 부정해 왔던 베네수엘라는 이제 기본적인 산술계산으로 설명 가능한 문제들이 주는 고통에 직면했다.
아라구아(Aragua) 주(州)에서 돼지와 닭을 키우는 사울로 에스코바(Saulo Escobar)는 "작년에 암탉 20만마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7만마리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소유한 커다란 닭장 여러개가 텅 비어 있었는데, 닭이나 사료를 살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가격통제로 인하여 사업은 이익을 낼 수 없게 되었고, 무장강도들은 그에게 상납금을 요구하거나 달걀을 훔쳐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최근 보건 상황은 식량부족이 재난 수준임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 보건부에 따르면, 약품 부족과 영양실조로 인하여 작년(2016년)에 1만1천명 이상의 아기들이 사망했고 영아사망률은 30%로 치솟았다. 이 통계가 발표되고 이틀 후에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 대통령은 보건부 장관을 해임했다.
천주교 구호단체 카리타스(Caritas)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아동 굶주림은 "인도주의적 위기상황"이다. 5세 이하 아동의 11.4%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48%가 굶주림의 위험에 처해 있다.
마두로 다이어트
지난 7주 동안 시위자들이 거리로 나와 "우리는 배가 고프다!"라고 외치며 행진을 했고,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이들을 진압했다.
베네수엘라의 주요 대학들이 6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6년 한해 동안 조사대상자의 4분의3이 평균 19파운드(8.6kg) 만큼 체중이 감소했다. 베네수엘라인들은 이러한 전국민적인 체중감소 현상을 "마두로 다이어트"라고 부르는데, 전쟁지역이나 태풍, 가뭄, 전염병 등 천재지변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이 아니면서도 이 정도 수준의 굶주림이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경제학자들은 베네수엘라의 재난이 - 농경지 국유화, 왜곡된 통화 정책, 정부에 의한 식량분배의 통제 등으로 인한 - 인재(人災)라고 지적한다. 수백만명의 국민이 굶주리고 있는 와중에도 정부는 구호단체의 식량 지원을 거부했다. 산유국이 구호품 지원 대상일 수 없다는 시각에 익숙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베네수엘라 농업 전문가 카를로스 마차도(Carlos Machado)는 "이것이 농경지 국유화의 문제만은 아니며, 정부가 생산자, 제조자, 분배자 역할을 모두 하겠다고 결정함으로 인하여 식량 생산 계통 전체가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산업이 무너지면서 농부들은 먹이, 비료, 농기계 부품 등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이들에겐 돈이 없다. 정부는 석유를 수출해서 번 돈을 국외의 채권자들에게 이자를 지불하는데 쓰고 있다.
에스코바는 농장을 운영하려면 3개월마다 400톤의 고단백질 사료를 수입해 와야 하지만 실제로 입수할 수 있는 양은 100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다른 농민들처럼 암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형편상 저렴하고 영양이 적은 사료를 구입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암탉의 크기가 예전만큼 클 수가 없다. 달걀도 마찬가지다. 그는 "품질도 생산량도 모두 떨어졌다"고 말했다.
에스코바가 키우는 돼지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2년전에 돼지 한마리의 평균 체중은 242파운드였으나 지금은 176파운드다. 작년에 그의 농장에서 3개월만에 2천마리의 돼지가 죽었는데, 전염병이 발생했는데 백신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태어나는 새끼돼지들도 크기가 작다. 상당수는 귀끝에 상처가 나서 피가 맺혀 있었다. 농장의 수의사 마리아 아리아스(Maria Arias)의 설명에 따르면, "동물이 제대로 먹지를 못하면 다른 곳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려 하기 때문에, 돼지들도 다른 돼지의 귀를 뜯어먹는다"고 한다.
이익의 실종
베네수엘라는 예전부터 밀 등 기후조건상 대량 경작이 불가능한 식량을 수입해 왔다. 그러나 통계에 의하면 마두로의 전임자 우고 차베스(Hugo Chavez)의 토지 정책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수입 의존도는 전례 없이 높아졌다.
유가가 높을 때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원유의 가격은 배럴당 40달러 수준인데다 베네수엘라의 석유생산은 23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유소와 송유관 등이 망가지고 있는데 이를 만회할 시설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몇년째 농업과 관련된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카를로스 마차도에 따르면, 2004년에 연간 식량 수입량은 1인당 75달러 수준이었으나, 차베스가 농지 국유화에 박차를 가하며 1천만 에이커 상당의 농지를 압류하자 의존도가 급증했다. 정부가 공장들도 압류하면서 국내의 식량생산량은 곤두박질쳤다.
2012년에 연간 식량 수입량은 1인당 370달러로 증가했다. 그러나 유가는 떨어졌고 수입량은 73%나 감소했다.
농민들은 정부가 국내 농업을 촉진하는 대신 아예 고사시켜 버렸다고 말한다. 농민 연합(Confederation of Farmer Associations, Fedeagro)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쌀, 옥수수, 커피 생산은 60% 감소했다. 2005년부터 국유화된 설탕 공장은 대부분 가동률이 낮거나 아예 멈춰 있다.
극소수의 부유한 베네수엘라인들만이 암시장에서 충분한 식량을 구할 수 있다. 브라질과 콜럼비아에서 수입된 쌀은 1파운드에 6천 볼리바르 정도의 시세로 팔린다. 암시장 환율 기준으로 약 1달러 정도 되는데, 지난 5년간 볼리바르의 가치가 99% 하락했기 때문에 일반 베네수엘라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쌀 1파운드를 사기 위해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달러화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마두로를 지지하는 단체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고 저렴하게 배급하는 식량에 의존하거나 정부에 의해 통제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수퍼마켓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사람들은 식량배급이 끊길 수 있다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가격통제는 농민의 의욕을 박탈한다. 구아리코(Guarico)주(州)의 한 낙농업자는 - 그는 정부의 보복이 두려워 익명을 요구했다 - "이익이 전혀 나지 않고, 생산할수록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트랙터를 하나 사려면 한해 동안 번 돈을 전부 다 써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달에만 소 네마리를 도둑맞았다. 아마도 근처에 사는 굶주린 사람들의 소행일 것이라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농장주연합회장을 지낸 바 있는 비센테 카릴로(Vicente Carrillo)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가축 규모는 1천3백만마리에서 8백만마리 수준으로 감소했다.
카릴로는 10여년전에 자신의 농장을 팔았다. 불법점거자들의 위협, 그가 민중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자라며 비난을 퍼붓던 활동가들에게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문은 100년 넘게 그 땅을 소유해 왔었다. 그는 "이 사업에 30년 넘게 인생을 쏟아부었지만, 그 모든 것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에스코바는 농민이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국의 눈을 피해 불법으로 시세에 맞는 가격으로 파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지정한 가격으로 팔면 닭 사료 1kg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에스코바가 밤잠을 설치는 또 다른 원인은 범죄조직들이다. 지난 12월에 운송트럭이 강도를 당한 이후, 그는 교도소 근처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범죄조직 우두머리에게 "신변보호"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오토바이 세대가 농장을 찾아와 돈을 가져간다. 경찰을 부르면 오히려 위험만 더 커진다고 한다. "닭이랑 돼지 키우는 법은 알지만, 범죄자들을 다루는 법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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