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14384 (2018.4.26)

증오와 숭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증오에 휩싸인 자는 증오하는 대상의 대척점에 놓인 대상을 숭배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정신적인 취약점이 되며,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꼭두각시처럼 조종하기에 아주 유용한 장치로 사용될 수 있다. 사실과 거짓말을 적당히 섞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좌절감과 피해의식을 살살 건드려가면서 분노를 불러일으켜 판단력을 흐리고, "네가 겪는 그 모든 괴로움의 책임이 특정 대상에게 있다"고 가르친 후에, 나는 그 반대편 끝에 있는 존재인 것처럼 포장하면 된다.

이런 종류의 거짓말이 꽤 효과가 있는 이유중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이 문제는 네 탓이 아니야. 다 저 녀석 때문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냐 거짓이냐를 따지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하기 때문다. 꾿꾿하게 문제에 맞서는 것보다 남을 탓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당장은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피해의식이 많아서 분노가 쌓여 있고 뭔가 핑계를 잡아 누군가을 실컷 욕하고 괴롭히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일 경우에는 이런 종류의 장치에 너무나 쉽게 넘어간다. 예전에 적었던 "분노하는 갑돌이"가 그런 경우다.

비유적으로 얘기하자면, 부잣집에서 일하던 하인이 주인에 대한 불만을 품고 홧김에 깡패 두목에게 찾아가 노예가 되는 셈이다. 뭐가 어쨌던지 오로지 저 주인만 죽일 수 있으면 다른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내가 처한 상황과 관련된 나 자신의 역할과 책임은 모조리 다 무시하고 나의 불행은 오로지 특정한 그 누군가의 탓이라고 단정하며 증오하는 동시에 그 증오 대상과 대립 구도를 연출하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숭배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숭배하는 그 누군가가 승리한다고 해서 당신이 현재의 불행과 부조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가? 장담하건대 절대 그렇지 않다. 그 누군가는 당신 같은 노예들을 이용해서 온갖 이득을 취한 후에 또 다시 온갖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뭔가 엄청나게 정의롭고 역사적인 혁명과업이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면서 또 다른 공공의 적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적을 맹목적으로 증오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당신을 계속 꼭두각시로 만들어 부려먹으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 증오와 숭배에 빠져 살았던 시간이 아까워서, 또는 과거의 오판을 인정하기 싫어서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무시하고 계속 이런 상태를 고집한다면 당신은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서 끝까지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절대 비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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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달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