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_잡담2023. 8. 4. 08:39

 

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18556 (2018.8.21)

소득주도성장의 기본 줄기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주면 그만큼 소비할 수 있는 여력(구매력)이 상승할 것이므로 소비가 늘어나고 이를 통해서 경제성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인 것으로 보인다. 뭔가 더 복잡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아무튼 요지는 위의 내용인 듯하다.

그냥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 볼 때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제한하면 경제성장이 될 것이라는 논리는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는데, 뭔가 내가 모르는 심오한 이유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으나 어쨌든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그냥 생각 나는 대로 한번 정리해 보기로.

임금이 올라간 만큼 구매력이 올라가려면, 물건의 값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또는 임금 상승률보다는 훨씬 적게 올라야 할 것이다. 임금이 올라간 만큼 물가가 올라가 버리거나, 또는 임금이 올라가긴 했는데 정작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하면 구매력의 상승분은 그만큼 상쇄될 것이다. 문제는 임금상승 압력을 과도하게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경우 실제로 물가나 고용이 예전 그대로 가만히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갑돌이가 회사를 하나 운영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올해부터 인건비가 갑자기 많이 올라갔다. 갑돌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책을 몇가지 생각해 보면,

1. 인건비가 올라간 것을 상쇄하기 위해 직원의 수를 줄인다. 해고가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금방 되는 것도 아니므로 어쨌든 전체적으로 비용요소(소비)를 줄여야 할 것 같다.

2. 인건비가 올라간 것을 상쇄하기 위해 팔고 있는 물건/서비스의 값을 올린다. 값을 올리면 소비자들이 그래도 기꺼이 살까? 잘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비용을 줄여야 할 것 같다.

3. 자선사업한다 생각하고 그냥 상승분을 감내한다.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지만. 돈 엄청 아껴야겠다.

갑돌이가 1번을 선택할 경우엔 실업률이 올라갈 것이고, 2번을 선택할 경우엔 물가가 올라갈 것이고, 3번을 선택할 경우엔 회사 재정이 악화되어 불경기나 돌발상황에서 회사가 도산할 확률이 증가할 것이다. 하나만 택하진 않을 것이고 복합적으로 택할 수 있지만 어쨌든 고용주 입장에서는 비용 요인이 증가한 만큼 투자/소비는 줄이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게다가, 갑돌이가 회사를 운영하는 이유는 그냥 심심해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이므로 수익이 날 전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인건비 상승분을 감내하는 대신 그냥 폐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그냥 폐업하고, 다른 사업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최소한 당분간은 정규직을 절대 고용하지 않아야겠지. 어쨌든 돈은 아껴야겠다.

한편 이 상황에서 갑돌이네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갑돌이의 대응에 따라 당연히 영향을 받을 것이다.

1. 고용주가 직원의 수를 줄이려 하므로, 직장을 잃을 확률이 증가한다. 비정규직/계약직이면 더더욱 그렇다. 돈 아껴야겠다.

2. 급여는 올랐으나 물가도 올랐으므로 구매력이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그냥 숫자만 변하고 형편은 그냥 비슷. 올라간 물건값을 보니 아무래도 돈을 아끼긴 해야 될 것 같다.

3. 단기적으로는 다행이지만, 회사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으므로 회사 자체가 망할 수도 있다. 불안하다. 돈 아껴야겠다.

4. 회사가 폐업했으므로 그대로 실업자가 된다. 망했다.

직원 입장에서도, 인위적으로 과도하게 임금이 올라가면 고용주가 그냥 앉아서 그 손실을 감내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소비심리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나 자신도 돈 쓰는걸 줄이고 있는 중이다 -_-;)

모든 기업이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하진 않을 것이다. 회사는 이익이 좀 줄었지만 충분히 버틸만하고, 노동자는 급여가 올라서 구매력도 좀 좋아지고, 직원 수도 줄어들지 않은 회사. 대체 거기가 어딜까? 뻔하지 않은가? 바로 대기업/재벌기업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이득이 된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랐으니 - 이미 최저임금보다 훨씬 많이 받고 있지만 - 다음 임금협상에서 사측을 압박하기에 아주 좋은 명분이 생겼고, 이 정도로는 회사가 망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으며, 정규직 노동자는 쉽게 해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는 보너스.  

물론 대기업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이므로, 임금상승 압력을 상쇄하기 위해 신규채용을 동결하거나 줄이고 계약직 직원을 줄이는 것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비용지출을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청업체에겐 납품가격을 내리라고 압박할 것이고.

그러나 대기업과는 달리,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업체의 고용주와 노동자, 그리고 업체 규모를 떠나서 비정규직/계약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위에서 열거한 상황은 아주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업률이 악화되고 폐업이 줄을 잇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세금을 쏟아 부어서 내수를 진작시키면 될까? 복지부동으로 유명한 공무원들을 계속 늘리면 될까? 그런데, 그 세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결국 국민이 내야 한다. 세금을 급하게 올리면 결국 임금상승과 마찬가지로 위에서 열거한 것과 비슷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상위권 부자들에게만 징벌에 가까운 세금을 매겨서 와장창 빼 가져오면 될까? 내가 그 정도로 부자라면 그러기 전에 국내에 있는 사업/직업 정리하고 돈 다 싸들고 그냥 외국으로 이민 가버릴 것 같은데?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냥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으로 결과만 놓고 생각해 보자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간판을 걸고 강행한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은 이미 꽤 많은 돈을 받고 있는 대기업/재벌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배를 좀 더 부르게 해 주기 위해 수많은 중소업체 사장들, 직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있다. -_-;

대기업 정규직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서민들은 피눈물을 쏟는 그런 상황 아닌가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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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달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