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은 여기에
"Amuse on X"라는 블로그에 있는 글인데,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기에 여기에 번역해 정리해 둔다. 백신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시험이 일반의약품보다도 훨씬 더 허술하며, 언론은 여기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취지다. 미국에 대한 얘기이나, 우리나라도 상황이 아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한 남자가 탈모를 막으려고 약을 복용한다고 가정해 보자. 수십년전 FDA의 승인을 받고 이름 있는 제약사에서 판매한 그 약이 그 사람에게 인지기능 장애(cognitive dysfunction), 성기능 장애(sexual dysfunction), 신경계 기능저하(neurological deterioration)를 유발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부작용이 제품 라벨에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았고, 많은 의사들이 모르는 상태로 처방했으며, 해당 제약사가 부작용이 별것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가정해 보자. 더 나아가 이 사람과을 비롯해서 비슷한 처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요 언론매체에서 인터뷰, 의료 기록, 그리고 임상시험의 한계에 대한 균형 잡힌 논의를 통해 심도 있게 보도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보라. 같은 언론 매체가 백신에도 이런 수준의 검증을 적용할 것인가?
문제의 약은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이고, 언론매체는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의 팟캐스트인 '더 저널(the Journal)'이었다. "탈모 해결책이 일부 남성들을 병들게 한다"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에서, 케이트 라인보(Kate Linebaugh)와 그녀의 동료 롤프 윙클러(Rolfe Winkler)는 외모 때문에 약물을 복용한 후 지속적인 피해를 겪는 젊은 남성들의 모습을 완성도 있게 그려냈다. 그들은 임상시험 방법, 마케팅 관행, 그리고 규제 감독의 문제를 훌륭하게 취재했다.
백신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역설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이러한 비대칭성을 설명하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 의학 담론을 지배하는 서사적 틀(narrative framing)이다. 의사가 처방하고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은 일반 의약품도 회의론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백신, 특히 공중보건 명목으로 대량 투여되는 백신은 일종의 도덕적 무오류성을 획득했다. 백신에 대한 비판은 이단(heresy)으로 간주된다.
방법론부터 보자. 윙클러가 지적했듯이, 피나스테리드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인 공황발작(panic attack), 자살충동(suicidal ideation), 근위축(muscle astrophy), 인지기능 저하(cognitive decline) 등은 최초 임상시험에서 간과되거나 무시되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내분비학자는 임상시험 기간이 너무 짧고 규모가 작으며 연구 범위가 너무 좁아서 장기적(long-term) 또는 전신적(systemic) 위해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제약 연구에서 흔히 나오는 비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제가 백신 연구로 가면 비판이 사라진다.
통상적인 약물 임상시험은 - 제대로 수행한다면 - 무작위(radomized) 이중맹검(double-blind) 위약대조(placebo-controlled) 방식으로 진행되며, 효능과 안전성 문제를 모두 발견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긴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백신, 특히 어린이가 접종하는 백신은 비활성 위약(inert placebos)에 대조하는 시험을 거치지 않았다. CDC의 공식 문서가 이를 확인해 준다. 현재 소아 예방접종 일정에 따라 요구되는 72회의 백신 접종 중 단 하나도 - 다른 종류의 의약품에는 표준으로 적용되는 - 허가를 받기 전에 엄격한 위약대조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임상시험 데이터가 부작용을 알아내는 대한 유일한 수단일 때, 이 시험의 품질은 타협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식염수(saline) 위약 시험은 백신이 질병을 예방하는지 여부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해악을 끼치지 않는지 여부도 측정한다. 이 시험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의 의료개입(intervention)을 다른 의료개입과 비교하는 것에 그치는 셈이 되고 진정한 측정기준이 없어진다.
이전 백신들도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B형 간염 백신은 1980년대에 식염수가 아니라 다른 백신을 대조군으로 사용한 시험을 기반으로 승인되었다. DTP, MMR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기초 백신들은 우리가 최적 기준(gold standard)으로 여기는 시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 주류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지만 - 이론이 아니라 실제다. 드물긴 하지만 백신 법원에서 합의를 통해 백신 피해자가 수십억 달러의 배상금을 받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 윙클러의 피나스테리드 폭로와는 달리 - 언론의 첫페이지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자들도 이러한 불일치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일종의 이중성이다. 피나스테리드와 같은 선택적 약물을 논의할 때는 회의적인 태도가 장려되지만, 국가 승인 예방접종에 대해 이런 태도를 보이면 음모론자로 간주된다. "더 저널"의 취재팀은 반과학(anti-science)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면서 힘스(Hims)와 머크(Merck)를 조사할 수 있었다. 화이자(Pfizer)나 모더나(Moderna)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을 시도하려면 평판이 붕궤될 각오를 해야 한다. 전자는 소비자 보호, 후자는 허위정보로 간주된다.
마케팅 채널도 생각해 보자. 윙클러는 힘스가 젊은 남성들을 얼마나 매끄럽게 해당 약의 처방을 받도록 유도하하는지 기록하고 있다. 광고는 불안감을 악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고 부작용은 은폐된다. 이러한 방식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CDC가 진행한 홍보 캠페인 또한 전혀 다르지 않다. 공중보건 부서는 틱톡(TikTok) 광고를 제작하고, 인플루언서를 동원하고, 심지어 데이팅 앱과 제휴하여 백신 접종을 독려했다. 그러나 힘스와 달리 CDC는 이러한 캠페인에서 부작용을 공개할 의무가 없었다. 제품과 그 배후에 있는 회사에 따라 똑같은 방식이 비난받기도 하고 찬양받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 기준은 고지에 입각한 동의(informed consent) 원칙을 훼손한다. 젊은 남성들에게 피나스테리드가 성기능 장애를 일으킬 위험이 1.8%라는 사실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면, mRNA 백신이 심근염을 발생시킬 위험에 대해서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원격의료 업체들이 신경학적 증상을 은폐했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언론인들은 CDC의 백신 부작용 추적 시스템인 VAERS(Vaccine Adverse Event Reporting System, 백신 이상반응 신고 시스템) 데이터가 주요 백신 보고서에 언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약물이 사람의 기억력을 손상시키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러나 백신이 아이의 심장을 망가뜨리면 구석에 각주(footnote)로 나오는 것도 어렵다.
이러한 차이가 공공의 이익(public benefit)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백신은 결국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염을 줄이고 집단면역(herd immunity)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데이터 앞에서 이러한 주장은 무의미하다. 코로나19 백신은 전염을 막지 못한다. 질병의 심각성을 줄이기는 하지만, 공중보건 측면에서 보편적 백신 접종의 근거는 의학적 이유보다 오히려 도덕적인 이유에 더 가깝다. 만약 정말로 이익이 있더라도, 그렇다고 위험을 공개해야 하는 윤리적 의무를 제거할 수는 없다. 뉘른베르크 강령(Nurenberg Code)은 의도가 선하다는 이유로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다. 피나스테리드의 시판 이후 데이터(post-market data)를 놓고 머크를 비판했던 바로 그 기자들이 화이자의 단축된 임상시험이나 FDA의 신속한 승인 절차에 대해서도 똑같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기술 부족 때문이 아니라 백신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며 숭배하는 문화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가지 가설은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 규제하는 기관이 규제 대상에 의해 포섭되는 것)이지만, 너무 직설적이다. 더 나은 설명은 이념적 포획(ideological capture)이다. 백신은 진보적인 공공정책의 우상이자 기술지배적 미덕(technocratic virtue)과 집단적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백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포퓰리즘, 더 나아가 트럼프주의(Trumpism)로 간주된다. 이미 엘리트 계층의 합의를 지키려는 성향을 가진 언론은 이러한 금기를 스스로 체화했다.
언론이 백신에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칭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피나스테리드 취재와 동일한 겸손함이 예방접종에 대한 취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임상시험의 결함, 마케팅 전략의 문제, 부작용 등을 드러내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제품의 종류와 무관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피나스테리드는 머리카락을 원하는 남성들에게 투여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더 저널" 팟캐스트는 그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증거를 추적했다. 꼼꼼하고, 회의적이며, 투명한 접근 방식은 백신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언론이 대중에게 봉사하려면 단순히 무엇이 진실인지 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왜 특정한 범위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질문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떤 진실은 다른 진실보다 덜 평등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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