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29157 (2019.7.14)
최근에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한일관계와 일본의 수출규제 얘기가 나왔는데, 향후 이 사태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논하는 과정이 일종의 "예언자 놀이"처럼 되어 버렸다. 어차피 다 개인적인 망상이고 일종의 음모이론이라 객관적인 근거도 없지만, 여러 가지 얘기가 오가던 중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나름 신선한(?) 주장을 듣게 되었기에 기억을 더듬어 여기에 대강의 내용을 적어 본다.
이 주장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일관계 악화는 경제적으로는 손실을 초래할 것이나 정치적으로는 현 정권과 여당에게 이득이 크므로 정부 입장에서는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고 오히려 대립을 더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론의 근거는 대략 아래와 같다.
화해/치유 재단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를 보면, 국가간에 이미 합의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뒤집은 셈인데, 이럴 경우 상대방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 문제를 건드렸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일본으로부터 대응 내지는 보복을 당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반대 급부로 얻을 수 있는 모종의 이익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손실을 먼저 생각해 보자면, 일본의 보복은 당연히 경제 분야에서 온다. 한국와 일본은 경제적으로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소재, 부품, 생산설비 등 원천기술을 요하는 분야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국이 감당할 손해에 비해 한국에 줄 수 있는 손해가 훨씬 큰 방법을 찾아서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손실을 기꺼이 감수할 각오(?)를 하게 만드는 "이익"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정치 분야에서 온다. 진보 진영에 붙어 있는 "친북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희석시키는 손쉬운 방법은 친북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수 진영에도 똑같이 "친일 토착왜구"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다. 반일 정서를 자극하면서 일본과의 대결구도를 계속 유지하면 그에 따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 때문에 필경 보수 진영은 반대할 것이다. 이것을 놓고 "저들은 친일파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의연한 대응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 된다. 제대로 분위기만 조성한다면 "친일 토착왜구"는 "수구꼴통"보다 훨씬 더 유용한 공격무기가 될 것이다.
금상첨화(?)로 이번에 일본의 수출 규제가 정조준한 기업은 진보 진영이 매우 싫어하는 재벌기업의 대표주자, 삼성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일본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보며 "이번 기회에 망해봐라"하며 고소해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긴 해도 그 손실은 - 적어도 당장은 - 하이테크 분야의 재벌기업에 집중될 것이므로 일본을 이용해서 재벌을 응징하는 모양새가 되니까 정치적으로도 별반 손해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보수 진영에 손가락질을 하며 "재벌을 위해서 일본 편을 든다고"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 특히 일본 문제를 이용해서 - 감정적으로 선동할 경우 침착하게 상황을 따지기 보다는 그냥 다 같이 분노하며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므로, 내년 총선까지 "친일 토착왜구" 프레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 문제의 해결/타협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 그러므로, 현 정부와 여당은 계속 일본과의 협상이 교착 상태로 평행선을 달리도록 유지하면서 "일본놈들이 죽일 놈들"이라는 취지의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실질적으로 현재 일본의 움직임은 최소한 정치적으로는 여당의 편이다.
꽤 흥미로운 얘기였는데, 개인적으로 이 주장에 동의하진 않는다. "감정적으로 선동하면 대다수의 국민이 다 같이 분노하며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전제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적 손실이 눈앞에 오는데 계속 그렇게 할 정도로 이데올로기 중독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내 생각엔 내년이 되기 전에 경제적 악영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 오히려 여당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심각한 부담이 될 위험성이 크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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