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_잡담2023. 7. 31. 15:11

 

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12557 (2018.3.15)

얼마전에 몇몇 지인과 북핵 문제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에 "지금 상황에서 북한은 어차피 핵미사일을 가질 것이고 설사 핵미사일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실제 우리에게 쏠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쏘는 순간 다 같이 죽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핵무기를 가져도 대한민국이 망하진 않을 것이다. 너무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라는 얘기가 나왔었는데,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던 점들을 여기에 써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온 뉴스 등으로 보건대, 현재 북한에서 개발하려고 하는 것은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완성되면 미국 본토까지 핵탄두를 실어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북한이 핵미사일을 우리에게 쏠 리가 없다"는 생각도 일리가 있다. 북한도 지금 만들려는 핵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 남조선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전한다.

일단 북한이 핵ICBM 개발에 성공했다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북한이 핵ICBM을 개발하고 나서 스스로 더 이상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 "이만하면 되었다" 하면서 그냥 여기서 끝?

만약 내가 북한 입장이라면, 핵ICBM이 완성된 후에는 핵SLBM을 개발할 것이다. 미사일 기지가 폭격 당하는 상황에 대비해서 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는 핵미사일 정도는 갖춰야 되겠지.

핵SLBM 완성되면 또 "이만하면 되었다" 하면서 그냥 여기서 끝인가?

만약 내가 북한 입장이라면, 전략핵무기(strategic nuclear weapon) 기술은 이제 어느 정도 되었으니 다음은 전술핵무기(tactical nuclear weapon)를 개발할 것이다. 전술핵무기는 단거리 미사일, 대포 등으로 쏠 수 있는 소형 핵무기로, 군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전장에서의 실사용을 목적으로 한다. 즉, 전술핵무기를 갖추게 되면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을 한층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여기까지 와서 이걸 그냥 포기한다고?

자,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북한이 핵ICBM을 대한민국에 날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치자. 그러면 전술핵무기를 대한민국에 쏠 가능성도 그렇게나 희박한가?

전술핵무기는 살상반경이 상대적으로 작으니까 주한미군을 비롯해서 미국인들이 없는 곳만 골라서 쏘면 된다. 연평도나 전방의 우리 군부대 같은 곳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북한이 군대 규모는 우리보다 크지만 무기체계가 심하게 낙후되어 있어서,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은 유효할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북한군이 전술핵으로 무장해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만약 북한이 핵미사일을 완성한다면, 아마 제일 먼저 중국이 현재의 UN 대북제재에서 발을 뺄 것 같다. 중국도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을 원치 않으나, 미국만큼 절실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 중국을 공격할 가능성은 전무하고,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을 미국 견제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이 국경봉쇄하고 송유관 끊어 버리면 북한은 곧장 비핵화의 길로 갈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북한과 원수지간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의 UN 대북제재 참여는 북한정권이 죽지 않는 수준에서 적당히 괴롭히는 정도로 하고 있는 듯하다.

만약 북한이 핵미사일을 완성한다면, 대한민국은 당장은 아니겠지만 서서히 선택의 기로에 다가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핵무력을 빌려 핵균형을 이룸으로써 - 주한미군이 핵무장함으로써 - 미국의 속국이 될 것인가, 아니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동의함으로써 북한의 속국이 될 것인가?

독자적으로 핵균형을 이루겠다는 이유로 북한처럼 NPT 탈퇴하고 전세계의 제재를 받아가며 핵무기를 자체개발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얘기다. 이런 극단적인 방법은 정치범수용소와 공개총살이 당연시되고 지도자를 우상으로 만들어 신처럼 숭배하는 북한 같은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위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면, 북한 입장에서 핵무기 개발만큼 매력적인 카드가 없다. 내가 김정은 입장이라고 가정해 보면 정말 이렇게 좋은 카드를 도저히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다. 게다가 완성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판이 아닌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온갖 거짓말과 기만적인 행보를 동원해서 시간 끌고 버티면서 완성시켜야 한다.

김정일도 아마 같은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0년이 넘도록 제재와 비난과 압력을 감내해 가면서, 거짓말로 주변국들을 속여가면서, 자국민을 굶겨 죽여가면서, 지금까지 핵무기를 개발해 왔을 것이다. 김정은이 마치 비핵화를 할 것처럼 말 몇마디 했다고 비핵화가 될 것 같으면, 그런 얘기는 김정일도 했었다.

 

김정일과 김정은이 말한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은 결국 김일성의 유훈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얘기인데, 김일성 시절엔 북한이 핵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국군 또는 주한미군이 핵을 보유할 것을 우려하여 이런 상황을 반드시 막으라는 뜻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얘기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런 걱정이 그냥 나 혼자만의 상상으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어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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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달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