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h script2023. 10. 10. 21:29

 

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23017

우선, awk에서 match 함수와 substr 함수를 활용해서 특정 문자열 패턴을 검색하고 일치하는 부분만 출력하는 방법은 이전 게시물을 참고하자. 여기로.

일단 기본적인 예시는 아래와 같다. 행 전체($0)에서 문자열 "abc"가 있으면 일치하는 부분만 출력한다.

echo "abcdefg" | awk 'match($0,/abc/) { print substr($0,RSTART,RLENGTH) }'
abc

여기서는 입력에 대해 검색하고자 하는 문자열 패턴이 여러개일 경우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탭(tab)을 항목 구분자(field separator)로 사용하는 입력에서  두번째 항목($2)에 문자열 "abc"가 있는지 확인하고 세번째 항목($3)에 3개의 연속된 수자(정규표현식 [0-9][0-9][0-9])가 있는지 확인해서, 첫번째 항목과 함께 일치하는 부분만 출력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만약 입력된 행이 "1  abcde  1234"라면, 출력은 "1  abc  123" 이렇게 나와야 할 것이다.

만약 입력된 행이 "2  aabc  abc"라면, 세번째 항목에는 수자가 없기 때문에 출력은 "2  abc" 이렇게 나와야 할 것이다.

match 함수를 두번 사용하면 되는 것은 분명하므로, 일단 아래와 같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F 옵션을 이용해서 항목 구분자를 탭으로 지정했다.

echo -e "1\tabcde\t1234" | awk -F '\t' '{ print $1 }; match($2,/abc/) { print "\t" substr($2,RSTART,RLENGTH) }; match($3,/[0-9][0-9][0-9]/) { print "\t" substr($3,RSTART,RLENGTH) }'
1
  abc
  123

awk 스크립트 부분만 보기 편하게 다시 써 보면 아래와 같다.

{ print $1 };
match($2,/abc/) { print "\t" substr($2,RSTART,RLENGTH) };
match($3,/[0-9][0-9][0-9]/) { print "\t" substr($3,RSTART,RLENGTH) }

우선 첫번째 항목을 출력하고, 두번째 항목과 세번째 항목에 대해 각각 match 함수를 적용했다. 결과값은 괜찮으나 한줄로 모아서 출력해 주는 것이 보기에 깔끔하므로 print 대신 printf를 사용하여 줄바꿈이 나오지 않도록 해 보자. 이 경우엔 결과값을 출력한 후 마지막에 줄바꿈을 수동으로 추가해 주어야 한다. awk 스크립트 부분만 써 보면 아래와 같이 될 것이다.

{ printf $1 };
match($2,/abc/) { printf "\t" substr($2,RSTART,RLENGTH) };
match($3,/[0-9][0-9][0-9]/) { printf "\t" substr($3,RSTART,RLENGTH) };
{ printf "\n" }

따라서, 위의 예시는 아래와 같이 고치면 된다.

echo -e "1\tabcde\t1234" | awk -F '\t' '{ printf("%s",$1) }; match($2,/abc/) { printf("%s","\t" substr($2,RSTART,RLENGTH)) }; match($3,/[0-9][0-9][0-9]/) { printf("%s","\t" substr($3,RSTART,RLENGTH)) }; { printf "\n" }'
1  abc  123

test.txt 파일에 저장된 내용에 대해 이러한 작업을 한다고 가정하면 아래와 같이 된다.

awk -F '\t' '{ printf("%s",$1) }; match($2,/abc/) { printf("%s","\t" substr($2,RSTART,RLENGTH)) }; match($3,/[0-9][0-9][0-9]/) { printf("%s","\t" substr($3,RSTART,RLENGTH)) }; { printf "\n" }' test.txt

마지막으로, 입력에서 조건에 맞는 부분이 전혀 없을 경우에는 첫번째 항목만 출력될텐데 이 경우에 아예 행이 출력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면 출력을 파이프(|)로 넘겨서 grep이나 awk로 적당히 선별해 주면 되겠다. 위의 예시에서는 하나 이상 조건에 맞는 부분이 있다면 항목 구분자인 탭이 출력될 것이므로 출력값에서 탭을 포함하고 있는 것만 추려낼 수 있다.

awk -F '\t'  '{ printf("%s",$1) }; match($2,/abc/) { printf("%s","\t" substr($2,RSTART,RLENGTH)) }; match($3,/[0-9][0-9][0-9]/) { printf("%s","\t" substr($3,RSTART,RLENGTH)) }; { printf "\n" }' test.txt | awk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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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달가면

 

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41934 (2020.9.11)

 

https://youtu.be/yErKTVdETpw

 

망명한 전직 KGB 선전선동 전문가 유리 알렉산드로비치 베즈메노프(Yuri Alexandrovich Bezmenov)의 1984년 인터뷰 동영상의 일부를 여기에 네번째로 정리해 본다. 이전에 정리한 게시물은 아래와 같다.

유리 베즈메노프 인터뷰 - KGB 살생부, 방글라데시 혁명

유리 베즈메노프 인터뷰 - 소련의 실상과 붕괴 가능성

유리 베즈메노프 인터뷰 - 이데올로기 전복(ideological subversion)

베즈메노프는 인도 주재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하기 전에 모스크바에서 국영 언론사인 "노보스티(Novisti)"에서 근무했는데, 그 당시에 담당했던 업무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정리하는 부분은 인터뷰 동영상의 30분43초부터 39분10초까지다.


유리 베즈메노프:
모스크바에서 저는 "노보스티(Novosti)" 통신사(news agency)에 채용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선전선동 및 이데올로기 전복을 목적으로 한 KGB 전위조직이었습니다. 노보스티 직원의 75%는 KGB에서 임관한 장교들이었고 나머지 25%는 저처럼 특정한 임무를 위해 채용된 요원들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뭄바 우호 대학교(Lumumba Friendship University)에서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입니다. 이 학교는 KGB와 당중앙위원회가 직접 관리하는 거대한 시설이었는데, 소위 "국가 해방(national liberation)" 운동의 주도자들을 선발해서 교육했습니다.


이 사진은 루뭄바 대학의 학생들인데, 전혀 학생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군인에 가까워 보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러니까요.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면 "국가 해방" 운동을 주도했죠. 일반인의 평범한 언어로 표현하자면 "국제적 테러리스트 집단의 우두머리"들입니다.

제가 노보스티에서 담당했던 또 다른 업무는 소위 "진보 지식인"들을 응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들, 기자들, 출판업자들, 교사들, 대학교수들 등이죠.


이 사진은 크레믈린에서 촬영된 것인데,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이 저입니다.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온 지식인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죠. 이들 대부분이 우리가 소련 정부와 KGB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모른척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성적으로 탁월하기 때문에 초청된 손님인 것처럼 행동했죠. 우리 입장에서 저들은 그냥 선동공작에 사용하기 위한 정치적 매춘부들일 뿐이었습니다. 사진의 맨 왼쪽 인물이 제 상사인데, 표정을 보시면 손님을 존경하는 태도가 전혀 없습니다. 저 역시 이데올로기 세뇌 대상자를 대하는 KGB 요원의 전형적인 미소, 비웃는듯한 미소를 짓고 있죠.


이 사진은 모스크바에 있는 노보스티 본부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인 회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테이블 중앙에 앉아 있는 인물이 보리스 부르코프(Boris Burkov) 사장인데, 공산당 선전선동부의 고위 관료입니다. 저는 유명한 인도 시인 수미트라 난단 판트(Sumitra Nandan Pant) 옆에 서 있습니다. 그는 "레닌에게 바치는 랩소디(Rhapsody to Lenin)"라는 제목의 유명한 시를 썼기 때문에 소련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여행 비용은 모두 소련 정부에서 지불했습니다.

테이블에 술병이 몇개나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외신 기자들의 인지능력과 호기심을 저하시키는 방법이 저것입니다. 제 임무중 하나는 외국에서 온 손님을 계속 술에 취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모스크바 공항에 내리자마자 공항 VIP 라운지로 데려가서 양국간의 이해증진과 우정을 위해 건배하자고 제의하면서 계속 보드카를 권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소련의 모든 것들을 장밋빛으로 보게 되죠. 저는 이들이 체류하는 15일에서 20일 동안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특정 시점에서 술을 마시지 않도록 하면, 이들중 일부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어젯밤에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그때 공동합의서, 소련의 정치선전을 담은 성명서 등과 관련된 온갖 종류의 거짓말들을 주입하면서 포섭합니다. 그 시점에서 그들이 가장 유연합니다. 그들이 몰랐는지 아니면 모르는척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기법으로 술을 버렸고 특수한 알약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상당량의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는 불안정한 상태가 되는 것이죠.

1967년에 KGB는 "룩(LOOK)"이라는 미국 잡지 기자 12명이 소련을 방문할 때 저를 보냈습니다. 이들은 소련 사회주의 혁명(10월 혁명) 50주년을 맞이해서 취재를 목적으로 소련에 왔습니다. 기사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소련의 선전선동을 마치 미국 기자가 소련에 가서 취재한 후에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것처럼 포장해서 미국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형태였습니다. 이것은 견해가 아니라 소련이 미국인들에게 주입하고 싶은 선전문구들이었습니다.

소련의 체제에 대한 미묘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근본적인 취지는 "현재의 소련은 효율적으로 동작하는 훌륭한 체제이며 대다수 국민이 이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거짓말입니다만, 룩 잡지사의 기자들은 이 거짓말을 다양한 현학적 표현들로 포장했습니다. 온갖 종류의 합리화 논리를 동원해서 미국인들에게 거짓말을 전달했죠.

진행자:
그러니까 당신의 임무는 그들에게 선전 내용을 주입해서 그들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군요.

유리 베즈메노프:
맞습니다. 사실은 그들이 소련에 도착하기 전부터 - 소련을 방문하려면 돈도 엄청나게 많이 내야 합니다 - 노보스티는 그들에게 소위 "배경 설명(backgrounder)"이라는 20에서 25페이지 분량의 정보와 논설을 담은 문서를 전달합니다. 모스크바행 비행기표를 사기도 전에 이렇게 합니다. 해당 국가의 노보스티 직원 또는 소련 외교관은 방문신청자에게 이 문서를 전달하는 상황, 그리고 신청자가 그 내용에 대하여 보이는 반응을 분석하고 평가하여 비자(visa)를 발급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진행자:
그런식으로 방문자를 선별하는 것이군요.

유리 베즈메노프:
그렇습니다. 이 과정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므로, 정직한 언론인이 실제로 소련 방문 비자를 받고 1년 동안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이런 거짓말을 들고 돌아갈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 사진은 그 당시에 룩 잡지에 실렸던 사진입니다. 공산당이 스탈린그라드에 세운 이 기념비를 "러시아 군사력을 의인화한 상징"이라고 지칭하면서 사진 옆에 있는 기사에 "소련 국민들은 2차대전 승리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내용을 실었습니다. 이것도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히틀러와 스탈린이 시작한 전쟁에서 국민 2천만명이 죽었는데 그걸 자랑스러워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소련 국민은 이런 기념비를 보며 혐오감과 슬픔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2차대전으로 인해 아버지, 형제, 자매, 자식을 잃지 않은 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 기자들은 소련 당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 사진을 게재하면서 "러시아의 국가 정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큰 오해입니다. 당연히 룩 잡지는 소련에서 배포되지 않고 주된 독자층은 미국인이죠. 그 당시에 이 잡지를 읽었던 수백만의 미국인들은 소련 국민이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엇을 혐오하는지에 대하여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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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달가면

 

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41838 (2020.9.9)

 

https://youtu.be/yErKTVdETpw

 

망명한 전직 KGB 선전선동 전문가 유리 알렉산드로비치 베즈메노프(Yuri Alexandrovich Bezmenov)의 1984년 인터뷰 동영상의 일부를 여기에 세번째로 정리해 본다. 이전에 정리한 게시물은 아래와 같다.

유리 베즈메노프 인터뷰 - 소련의 실상과 붕괴 가능성

유리 베즈메노프 인터뷰 - 이데올로기 전복(ideological subversion)

여기에 정리하는 부분은 인터뷰 동영상의 54분43초부터 1시간3분35초까지이며, 베즈메노프는 KGB의 살생부와 방글라데시 혁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유리 베즈메노프:
이 사진은 인도 주재 소련 대사관의 부속 건물과 제 감독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인물은 인도 공산주의자 "메흐디"라는 사람이고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선전연구부의 "미트로힌"입니다. 이 부서는 선전과도 무관하고 연구와도 무관합니다. 이 부서의 업무는 여론에 영향력을 지닌 개인들의 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여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출판업자들, 편집장들, 기자들, 영화배우들, 교육자들, 정치학 교수들, 국회의원들, 사업가들 등인데, 이들은 통상 2개 집단으로 나누어 분류되었습니다. 소련의 외교정책을 지지하는 자들은 권력을 가진 위치에 갈 수 있도록 우리가 언론과 여론조작을 동원하여 지원하는 대상입니다. 반면에 소련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인신공격을 퍼부어 사회적으로 매장하거나 혁명의 시기가 오면 실제로 살해하여 제거할 것입니다.

남 베트남(South Vietnam)의 휴에(Hue)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같은 방식이죠. 베트콩이 이 도시를 단 이틀 동안 점령했었는데, 수천명의 베트남인들이 하룻밤만에 총살되었습니다. CIA는 공산주의자들이 대체 어떤 방법으로 해가 뜨기 4시간 전에 그 많은 사람들의 거주지를 파악해서 한꺼번에 체포하여 도시 외곽으로 데려가 총살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해답은 단순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오기 이미 한참 전부터 이발사들, 택시 운전사들 등 지역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이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어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을 지지하는 자들은 모조리 총살되었는데, 이는 하노이 주재 소련 대사관의 지휘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뉴델리 주재 소련 대사관에서도 똑같은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죠.

저는 제거 대상자 목록을 정리한 문서에서 저와 친하게 지내던 친소련 성향의 기자들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상주의적인 좌파였는데 이미 소련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KGB는 인도에 혁명 또는 급진적인 변화가 오는 시기에 이들을 다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진행자:
왜 그런가요?

유리 베즈메노프: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쓸모 있는 바보들, 소련 사회주의가 정말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체제라고 믿는 자들은, 그 환상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가장 극렬한 적대세력으로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KGB 교관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좌파들은 신경 쓰지 마라. 그런 정치적 매춘부들은 아예 잊어버리고 더 높은 곳을 지향해야 한다.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보수 성향의 언론을 노려라. 엄청나게 부유한 영화 제작자들, 학계의 지식인들, 냉소주의와 자아도취에 매몰되어 천사 같은 얼굴로 거짓말을 내뱉는 자들을 포섭하라."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고 탐욕적인 자, 자기 자신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믿는 자, KGB는 이런 자들을 포섭하고자 했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을 그렇게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들도 이용 가치가 있지 않나요?

유리 베즈메노프:
그들은 국가를 불안정화(destabilization)하는 단계까지만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좌파들을 봅시다. 수많은 좌성향 교수들, 그리고 아름다워 보이는 인권운동가들은 오로지 불안정화 단계까지만 중요합니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이들중 일부가 실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는 시점이 되면 환상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자신들이 권력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해왔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오히려 벽 앞에 일렬로 서서 총살당하겠죠. 실제로 이들이 권력을 잡으면 오히려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세력으로 변합니다.

니카라과(Nicaragua)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죠. 전직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 대부분이 감옥에 갇혔고 이들중 하나는 산디니스타(Sandinista,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에 대항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레나다(Grenada)에서도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리스 비숍(Maurice Bishop)은 마르크스주의자였는데, 새로 등장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라키(Taraki)는 아민(Amin)이 죽였고, 아민은 KGB의 지원을 받은 바브락 카르말(Babrak Karmal)이 죽였습니다. 방글라데시(Bangladesh)도 마찬가지죠. 강한 친소련 성향의 좌파인 무지부르 라흐만(Mujibur Rahman)을 암살한 것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추종하는 그의 동료들이었습니다. 어디에서나 전부 다 같은 양식을 나타냅니다. 쓸모 있는 바보들, 이상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목적이 달성된 후에는 전부 죽이거나 추방하거나 아니면 쿠바(Cuba)처럼 감옥에 가둡니다. 쿠바의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따라서, 소련에 협조하던 인도인 대부분이 제거 목록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냈을 때 저는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충격이고 몸까지 아프더군요. 하루는 대사 집무실에서 회의를 하는데, 일어나서 "국가간의 우정과 합의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냥 우리는 살인자 집단"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해주는 유서 깊은 국가에 대해서 우리는 깡패짓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망명하지 않고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습니다만 놀랍게도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더군요. 저는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거나 유실된 문서가 발견된 것처럼 꾸며서 제보를 했습니다만, 심지어 보수 성향의 언론에서조차 저에게 응답을 하지도 않았고 제보한 내용을 보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망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시점은 방글라데시 사태였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이슬람 풀뿌리 혁명(islamic grassroot revolution)"이라고 표현했는데, 완전히 거짓입니다. 이것은 이슬람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풀뿌리 혁명도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혁명은 모두 고도로 훈련된 조직의 작품입니다. 일반 민중과는 무관합니다.

방글라데시 사태는 일반 국민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와미 연맹(Awami League) 정당에 속한 자들 대다수가 모스크바(Moscow)에 있는 당교(黨校, high party school)에서 교육을 받았고, 묵티 파우지(Mukti Fauj, 인민군) 사령관들 대다수가 - 스와포(SWAPO, South West Africa People's Organisation, 나미비아 해방군) 같은 세계 각국의 소위 "해방군"들과 마찬가지로 - 루뭄바 대학(Lumumba University), 심페로폴(Simferofol)과 타슈켄트(Tashkent)에 있는 KGB 시설 등지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인도 영토가 동 파키스탄(East Pakistan, 현재의 방글라데시)을 파괴하기 위한 교두보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천명의 소위 "학생"이라는 자들이 인도를 거쳐 동 파키스탄으로 들어가고 있더군요. 인도 정부는 모른척 했습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인도 경찰도 알았고 인도 정보부도 알고 있었습니다. KGB는 당연히 알고 있고, 심지어 CIA도 알았습니다. 그 부분이 정말 화가 나는데요. 왜냐하면 제가 망명을 한 후에 CIA 요원들과 면담을 할 때 동 파키스탄에서 언제 사건이 터질지 모르니 주시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에게 제임스 본드 소설을 너무 많이 읽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어쨌든, 동 파키스탄은 무너질 운명이었습니다. 캘커타 주재 소련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제 동료가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서 좀 쉬려고 지하 창고로 내려갔는데, 커다란 상자들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상자에는 "다카 대학(Dhaka University)으로 보내는 출판물"이라고 적혀 있었죠. 동 파키스탄의 수도가 다카입니다.

그는 술에 취하기도 했고 호기심이 생겨서 이 상자를 열어 보았는데, 출판물은 없고 칼라슈니코프(Kalashnikov) 소총과 탄약이 있었죠. 아무튼 얘기하자면 깁니다. 동 파키스탄 혁명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당장 망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탈출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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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달가면

 

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41795 (2020.9.8)

 

https://youtu.be/yErKTVdETpw

 

망명한 전직 KGB 선전선동 전문가 유리 알렉산드로비치 베즈메노프(Yuri Alexandrovich Bezmenov)의 1984년 인터뷰 동영상의 일부를 여기에 두번째로 정리해 본다. 첫번째로 정리한 "이데올로기 전복(ideological subversion)"에 대한 내용은 이전에 작성한 게시물을 참고하자. 여기로.

여기에 정리하는 부분은 인터뷰 동영상 4분30초부터 13분12초까지의 내용이며, 베즈메노프는 소련 생활의 실상과 체제 붕괴 가능성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진행자:
미국에서는, 주로 대학에서 그렇습니다만, 소련 체제는 미국과 다르지만 아주 많이 다르지는 않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국가체계가 결국은 부패, 거짓, 폭압 등으로 수렴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공산주의 치하의 삶과 미국에서의 삶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유리 베즈메노프:
양쪽의 삶은 매우 크게 다릅니다. 경제적으로 소련은 국가자본주의(state-capitalism)이며, 개인은 아무런 권리도, 가치도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도 가치가 없어서 곤충과 비슷한 수준의 소모품일 뿐입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최악의 범죄자조차 인간 대접을 받습니다. 일부는 자신의 범죄를 이용해 오히려 돈을 벌기도 하는데, 옥중에서 회고록을 집필하면 정신 나간 출판사들이 거액을 지불합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차이는 다양한데 누구에 대한 얘기를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산주의로 인한 피해를 입은 바가 없습니다. 군부 고위 장교 집안에서 자랐으니까요. 대부분의 기회가 저에게 열려 있었고 대부분의 비용은 정부에서 지불했습니다. 통치세력이나 경찰과 마찰을 빚었던 적도 없습니다. 소위 "사회주의 체제"의 장점을 즐길 수 있는 위치였죠.

제가 망명한 주된 이유는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도의적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소련 체제의 비인간적인 방식에 대해 반발했기 때문이죠.

진행자: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유리 베즈메노프:
가장 분노했던 점은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지식인들에 대한 폭압이었습니다. 스탈린의 무자비한 폭압과 후르시초프의 일종의 자유화 사이의 격동기를 살았던 젊은 학생의 눈에는 극도로 혐오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두번째로, 인도 주재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소련이 인류 역사의 그 어떤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비교해도 백만배나 폭압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련은 인도에 자유, 진보, 우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 착취, 노예제도, 그리고 경제적 비효율성을 가져다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도를 사랑하게 되면서 KGB 기준에서 볼 때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 빠졌는데, "분열된 충성심(split loyalty)"이라는 것입니다. KGB 요원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국가를 조국보다 더 사랑하는 상태가 된 것이죠. 저는 글자 그대로 인도라는 아름다운 국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극명하게 대조적이고 겸손하고 관대하며 철학적/지성적 자유가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6천년전에 제 조상들이 동굴에서 날고기를 먹었을 때 인도는 이미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습니다. 저는 끔찍한 소련 정권과 완전히 결별하기 위해 망명을 선택했습니다.

진행자:
우리는 스탈린 시대의 집단수용소와 노예노동수용소에 대한 내용을 많이 접했습니다. 미국의 일반적인 시각은 이런 것들이 과거의 전유물이라는 것인데,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유리 베즈메노프:
물론입니다. 소련의 집단수용소 체계는 그 성격이 전혀 변하지 않았고 단지 수감된 죄수의 수자가 변할 뿐입니다. 소련의 통계는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확히 몇명의 정치범이 수용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다양한 정보출처를 통해서 추정하건대 2천5백만명에서 3천만명의 소련인이 사실상 노예로 살아가는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캐나다 인구 전체에 맞먹는 규모의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는 셈이죠.

미국의 대중들에게 소련의 집단수용소는 과거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의도적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거나 아니면 선별적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지성적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이 결여된 것입니다.

진행자:
지식인 계층이 아니라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들은 소련 체제를 지지합니까? 그들의 태도는 어떤가요?

유리 베즈메노프:
소련의 일반 시민은 소련 체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해치고 죽이는 체제이니까요. 정보가 부족하고 교육이 충분치 않아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의식적으로 소련 체제를 지지하는 시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엘리트 계급에 속해서 사회주의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조차 다른 종류의 이유로 소련 체제를 증오합니다. 물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대로 생각할 수 없고 항상 두려움속에 있으며 이중성과 분열된 인격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비극이죠.

진행자:
소련 국민이 실제로 현 체제를 극복하거나 다른 체제로 대체하려 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유리 베즈메노프:
소련 체제가 내부로부터 붕괴할 가능성은 상당히 큽니다. 사회주의/공산주의/전체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서 자기파괴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민의 충성심이 없고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소통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서방세계의 다국적 기업들, 정부들, 그리고 지식인들이 - 미국 학계가 소련 체제에 우호적이라는 점은 유명합니다 - 소련 정권을 지지하고, 돈과 기술을 제공하고, 곡물 거래 협정을 맺고, 정치적으로 존중하는 한, 자유민주주의를 배반한 자들이 이런 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소련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소위 "미 제국주의"가 소련 체제에 영양공급을 계속 해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본주의 진영이 자신을 파괴하려는 적에게 오히려 지지를 보내고 영양공급을 해주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역설(paradox)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행자:
뭔가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 있는 것 같군요.

유리 베즈메노프:
맞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수용소 체계에 편입되어 사회주의적 평등의 모든 장점을 누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어떤 장점이 있는가 하면, 돈을 받지 않고 일해야 하고, 몸에 득실거리는 이를 잡하야 하며, 널빤지 위에서 잠을 자야 할 것입니다. 장소는 알래스카쪽이 되겠군요. 미국인들이 각성해서 미국 정부가 소련 전체주의를 돕는 행위를 막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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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달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