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35137 (2020.2.17)

프레이거U(PragerU)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동영상.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상당수가 잊어버리고 있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https://youtu.be/jP6OVc2Mw-o

 

if you want a happy life, stop comparing yourself to other people.
행복한 인생을 원한다면, 남들과 비교하기를 멈추라.

comparing yourself to others can create an unrealistic standard for success.
남들과 비교하면 비현실적인 성공의 기준을 만들 수 있다.

real success means making a living, pursuing excellence, and finding meaning in what you do.
진정한 성공은 자립해서 탁월함을 추구하며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someone else's life may look perfect on the outside, but no single aspect tells the whole story.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일지 모르나, 한 측면이 모든 이야기를 다 말해주는 경우는 없다.

everyone has pain, struggles, baggage.
모든 사람은 고통, 어려움, 감정의 응어리를 가지고 있다.

so face it: you don't want someone else's life, you want a better version of your own.
그러니, 현실을 직시하라. 당신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so start improving it today.
그러니 오늘부터 노력하라.

be a better person than you were yesterday.
어제의 당신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라.

and
그리고

don't compare yourself to others.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이러한 주제를 정말 흥미진진하고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이 조던 피터슨(Jordan Peterson) 교수인데, 강연이나 대담이 꽤 분량이 길기 때문에 이렇게 압축적으로 짧게 만든 동영상도 나쁘지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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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34900 (2020.2.8)

지금 여기에 쓰는 글은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주변을 관찰한 결과이므로, 전체가 다 이렇다고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론이나 상상이 아니라 실제 사례를 보면서 생각하고 느낀 바를 적은 것이므로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래와 같은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유명 대학병원의 의사가 있다. 진료도 하고 수술도 한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바쁘게 일하다가 밤늦게 퇴근한다. 이 의사가 받는 업무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까? 꽤 크다. 의사라는 직업은 그냥 적당히 할랑하게 놀면서 빈둥대는 직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사가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고 의사를 하면 돈을 꽤 많이 벌기 때문에 그만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의사는 이미 집안이 워낙 부유해서 굳이 의사를 하지 않아도 평생 먹고 놀면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옳다구나 하면서 그만둘까?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전부 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의사를 하고 있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것인가?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일은, 특히 중요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스트레스를 감내해 가면서 그 일을 한다. 생계 때문이라면 당연하다. 그런데 생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 중에도 이걸 다 감내하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왜 그런가?

한편,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힘들어하다가 사표를 낼 결심을 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생하면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존을 위한 경제적 필요성을 제외하고, 저 의사가 사표를 내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 일이 자신에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하는 일은 필요하고 중요하므로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자기 자신의 가치관과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 이제 아이를 키우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일단 한가지는 분명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굉장히 어렵고, 큰 스트레스를 받는 종류의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쉬웠던 적은 없다. 그건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진짜 문제는 양육자가 그 스트레스를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느냐다.  

과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가? 내가 직접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나는 돈을 벌어오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아니면 내가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직장에서 돈을 버는 것에 비하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상대적으로 하찮고 의미 없는 일인데,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만약 이런 생각이 들고 있다면, 육아 스트레스는 그야말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된다.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붙잡혀서 의미가 크지 않으면서 어렵기만 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이 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은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에 따라 성능이 크게 좌우된다. 실제 인간이 판단한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판단 기준을 그대로 모방하도록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것이 인공지능이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는 양육자의 모든 말과 행동을 모방하므로,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양육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드는 일이므로, 엄청나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아이의 성격과 인생은, 예전에는 대부분 부모, 특히 어머니에 의해 좌우되어 왔지만 이제는 부모가 지불하는 돈을 받는 제3의 양육자들이 좌우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만약 그 제3의 양육자가 부모보다 더 훌륭한 인격을 지니고 부모보다 더 아이를 사랑하며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때로는 엄하게 잘못을 지적할 수도 있다면 좋겠지만, 친자식도 제대로 키우기가 어려운데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그렇게 양육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면서 돈 버는 여성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예의 바르고 똑똑하고 밝은 아이를 보면 "저 아이의 엄마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하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을 넘어 경외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이를 저렇게 훌륭한 모습으로 이끌어낼 자신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발휘할 수 있는 - 그 어떤 남성도, 마블 어벤저스도 흉내낼 수 없는 - 진정한 수퍼파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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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32299 (2019.11.3)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 "카인과 아벨"이 워낙 잘 알려져 있다 보니 아래에 적은 짧은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창세기에 포함된 원본의 심오함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졸작이겠으나, 어쨌든 그냥 잊어버리자니 조금 아까워서 여기에 기록해 둔다. 

동명이인: 카인과 아벨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어떤 시기에, 어떤 도시에, 형제가 살았다. 형의 이름은 카인, 동생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은 카인보다 성실하고 눈치도 빨랐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사업이 잘 되어 돈도 많이 벌었다. 친구도 많았고 여자들도 아벨에게만 모여드는 것 같았다. 반면에 카인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긴 했지만 아벨의 성공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였다.  

카인은 항상 아벨이 맘에 들지 않았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아벨만 일이 잘 풀리고 자신은 이렇게 쪼들리고 있는지 짜증만 났다. 노력을 안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아벨은 큰 노력 없이 운 좋게 성공해서 잘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길, 도대체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거야?"

아벨은 아벨대로 카인의 태도와 행동에 짜증이 났다. 아벨의 눈에 비친 카인은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주변 여건만 탓하는 패배자였다. 형제라는 이유로 마지못해 금전적으로 좀 도와주기도 했지만 카인은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이런 값싼 동정 따위 필요없지만 형제간이니까 성의를 봐서 받아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벨은 더욱 짜증이 났다. "가진 것도 없고 남탓만 하고 노력도 제대로 안하면서 뭐가 잘났다고 저래?"

결국 형제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아벨은 카인을 무시했고 카인은 아벨을 증오했다.

카인의 울화는 점점 심해져서,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카인은 우선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 보았다.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신(神)의 계율을 지키면서, 아벨이 어떻게 살던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호화롭게 사는 아벨의 모습이 자꾸 눈에 보이니, 아무리 모른척하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던 중에, 카인은 어느 광장에서 우연히 아바돈이라는 이름의 늙은이를 만났다. 200살도 넘은 듯 엄청나게 늙어 보였고 사람인지 유령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소리에는 젊은이 못지 않은 힘이 실려 있었다. 아바돈은 자신을 "가난뱅이들의 구원자"라고 칭하며, 분노에 이를 갈고 있는 카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벨이 저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저 놈은 불의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야. 네가 가져야 할 정당한 몫을 아벨이 교묘하게 가로채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계율이라는 것은 아벨 같은 탐욕스러운 놈들이 자기네들만 호화롭게 살기 위해 만든 속임수라고! 너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너처럼 화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한두명이 아니야. 다 뒤집어버려!"

아바돈의 웅변에 용기를 얻은 카인은 그동안 지켜왔던 신의 계율은 다 허상이며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이 구름이 가려 칠흑 같던 어느 밤에 아벨을 찾아갔다. "네 놈이 그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네 놈이 가로챘기 때문이야. 신의 계율 따위는 너 같은 부자놈들이 지어낸 속임수라고!"

카인은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고 돈과 귀중품을 챙겨 달아났다.

부자가 된 카인은 그 동안의 가난에 복수라도 하듯이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이렇게 꿀 같은 생활을 네 놈 혼자만 즐겼단 말이지? 아벨, 넌 죽어도 싸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다가, 또 다시 달이 구름에 가려 칠흑같은 어느 밤에 카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카인에게 말했다. "네 놈이 그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네 놈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계율 따위는 다 속임수라고!"

도둑은 카인을 돌로 쳐서 죽이고 돈과 귀중품을 챙겨 달아났다.  

 

 

וַיֹּאמֶר יְהוָה, אֶל-קָיִן: לָמָּה חָרָה לָךְ, וְלָמָּה נָפְלוּ פָנֶיךָ.
הֲלוֹא אִם-תֵּיטִיב, שְׂאֵת, וְאִם לֹא תֵיטִיב, לַפֶּתַח חַטָּאת רֹבֵץ; וְאֵלֶיךָ, תְּשׁוּקָתוֹ, וְאַתָּה, תִּמְשָׁל-בּוֹ.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격노하였느냐? 왜 얼굴을 숙이고 있느냐?
네가 바르게 행한다면 그 얼굴을 다시 들게 되지 않겠느냐? 만약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죄악이 너를 갈망하며 문앞으로 슬금슬금 기어올 것이나, 그래도 너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
(창세기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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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28082 (2019.6.11)

원문 기사는 여기로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 연구원의 기고문이다.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본다.  


캐나다에서 의료비 지출규모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를 수 있다. 혹자는 "무상 의료"라고 말한다. 분석가들은 국민이 세금납부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의료 분야에 얼마를 지출하고 있는지 계산해 보려고 한다. 가장 최근에 계산된 추산치를 보자면, 2018년 한해 동안 4인 가족 기준으로 평균 12935달러(캐나다 달러, 약 1155만원)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의료체계에는 추가적인 비용 요소가 있다. 바로 대기 시간이다.

2018년 한해 동안 약 108만명의 캐나다 국민이 필요한 치료를 적시에 받지 못하고 기다렸던 것으로 추산된다. 평균 대기 시간이 11주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심각한 것이다. 게다가 이 대기 시간은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은 후부터 기다린 시간이다.

이렇게 오래 기다려도 큰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대기 시간 내내 심각한 고통과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환자들은 시간 지체로 인하여 병세가 악화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대기 시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조사한 최근 연구 결과를 보자. 대기 시간 통계, 임금 통계, 대기 시간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겪은 환자들의 보고 등을 이용하여 추산한 결과, 임금 및 생산성 손실은 21억달러였다. 적시에 치료 받지 못한 108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평균 1924달러의 손실을 본 셈이다.

이것은 오로지 경제활동에 대한 영향만을 고려한 보수적인 추산치다. 경제활동 외에 주말과 저녁 시간에 고통 없이 취미 생활을 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시간까지 손실로 환산하여 계산에 포함시키면 손실액은 63억달러로 올라가며 1인당 5860달러가 된다. 수면 시간(8시간)과 처음에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기 위해 기다린 시간은 제외한 수치다.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의사를 처음 만날 때까지 무려 8.8주를 기다린다.)

혹자는 보편적 의료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이 무작정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커먼웰스 펀드(Commonwelth Fund)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보편적 의료를 채택하고 있는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호주, 프랑스 등은 캐나다 보다 대기 시간이 훨씬 짧다. 2016년 자료를 보면 선택적 외과수술을 위해 18퍼센트의 캐나다인이 4개월 이상을 기다렸는데, 네덜란드는 4퍼센트, 프랑스는 2퍼센트, 독일은 0퍼센트이다.

당연히, 이러한 국가들은 보편적 의료를 다른 방식으로 운영한다. 캐나다와 달리 이 국가들은 민간 분야를 배척하지 않고 협력의 상대로 받아들였고, 활동실적에 따라 병원에 지원금을 제공했으며, 환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개인부담금을 적용했다(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면제). 반면에 많은 캐나다인들은 여전히 민간 분야를 보편적 의료의 반대 개념으로 간주한다. 병원에 대한 지원금은 정부에서 결정하여 예산으로 책정하며 환자에 대한 자기부담금도 부과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해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환자들이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막아서는 안된다. 다른 국가들이 이미 그 방법을 찾은 것은 분명해 보이며,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보편적 무상 복지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고 한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세금의 형태로 연간 1천만원 이상을 의료체계 유지를 위해 헌납하면서, 아프면 의사 한번 만나려고 2개월을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려서 의사를 만난 후 실제로 치료를 받을 때까지 또 2개월 넘게 기다린다. 내가 아는 바로는 캐나다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아플때 아예 그냥 미국으로 건너가서 치료를 받고 온다.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이라고 그렇게 욕하는 동시에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를 늘리자고 주장하는 희한한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정부를 운영하는 주체도 결국 다 똑같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국가가 책임져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국 공무원들에게 다 맡기고 싶다는 얘기가 된다. 믿을 사람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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