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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32299 (2019.11.3)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 "카인과 아벨"이 워낙 잘 알려져 있다 보니 아래에 적은 짧은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창세기에 포함된 원본의 심오함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졸작이겠으나, 어쨌든 그냥 잊어버리자니 조금 아까워서 여기에 기록해 둔다. 

동명이인: 카인과 아벨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어떤 시기에, 어떤 도시에, 형제가 살았다. 형의 이름은 카인, 동생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은 카인보다 성실하고 눈치도 빨랐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사업이 잘 되어 돈도 많이 벌었다. 친구도 많았고 여자들도 아벨에게만 모여드는 것 같았다. 반면에 카인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돈을 벌긴 했지만 아벨의 성공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였다.  

카인은 항상 아벨이 맘에 들지 않았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아벨만 일이 잘 풀리고 자신은 이렇게 쪼들리고 있는지 짜증만 났다. 노력을 안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아벨은 큰 노력 없이 운 좋게 성공해서 잘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길, 도대체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거야?"

아벨은 아벨대로 카인의 태도와 행동에 짜증이 났다. 아벨의 눈에 비친 카인은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주변 여건만 탓하는 패배자였다. 형제라는 이유로 마지못해 금전적으로 좀 도와주기도 했지만 카인은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이런 값싼 동정 따위 필요없지만 형제간이니까 성의를 봐서 받아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벨은 더욱 짜증이 났다. "가진 것도 없고 남탓만 하고 노력도 제대로 안하면서 뭐가 잘났다고 저래?"

결국 형제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아벨은 카인을 무시했고 카인은 아벨을 증오했다.

카인의 울화는 점점 심해져서,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카인은 우선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 보았다.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신(神)의 계율을 지키면서, 아벨이 어떻게 살던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만 집중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호화롭게 사는 아벨의 모습이 자꾸 눈에 보이니, 아무리 모른척하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던 중에, 카인은 어느 광장에서 우연히 아바돈이라는 이름의 늙은이를 만났다. 200살도 넘은 듯 엄청나게 늙어 보였고 사람인지 유령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소리에는 젊은이 못지 않은 힘이 실려 있었다. 아바돈은 자신을 "가난뱅이들의 구원자"라고 칭하며, 분노에 이를 갈고 있는 카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벨이 저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저 놈은 불의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야. 네가 가져야 할 정당한 몫을 아벨이 교묘하게 가로채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계율이라는 것은 아벨 같은 탐욕스러운 놈들이 자기네들만 호화롭게 살기 위해 만든 속임수라고! 너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너처럼 화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한두명이 아니야. 다 뒤집어버려!"

아바돈의 웅변에 용기를 얻은 카인은 그동안 지켜왔던 신의 계율은 다 허상이며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달이 구름이 가려 칠흑 같던 어느 밤에 아벨을 찾아갔다. "네 놈이 그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네 놈이 가로챘기 때문이야. 신의 계율 따위는 너 같은 부자놈들이 지어낸 속임수라고!"

카인은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고 돈과 귀중품을 챙겨 달아났다.

부자가 된 카인은 그 동안의 가난에 복수라도 하듯이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이렇게 꿀 같은 생활을 네 놈 혼자만 즐겼단 말이지? 아벨, 넌 죽어도 싸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다가, 또 다시 달이 구름에 가려 칠흑같은 어느 밤에 카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카인에게 말했다. "네 놈이 그렇게 잘 사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네 놈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신의 계율 따위는 다 속임수라고!"

도둑은 카인을 돌로 쳐서 죽이고 돈과 귀중품을 챙겨 달아났다.  

 

 

וַיֹּאמֶר יְהוָה, אֶל-קָיִן: לָמָּה חָרָה לָךְ, וְלָמָּה נָפְלוּ פָנֶיךָ.
הֲלוֹא אִם-תֵּיטִיב, שְׂאֵת, וְאִם לֹא תֵיטִיב, לַפֶּתַח חַטָּאת רֹבֵץ; וְאֵלֶיךָ, תְּשׁוּקָתוֹ, וְאַתָּה, תִּמְשָׁל-בּוֹ.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왜 격노하였느냐? 왜 얼굴을 숙이고 있느냐?
네가 바르게 행한다면 그 얼굴을 다시 들게 되지 않겠느냐? 만약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죄악이 너를 갈망하며 문앞으로 슬금슬금 기어올 것이나, 그래도 너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
(창세기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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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28082 (2019.6.11)

원문 기사는 여기로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 연구원의 기고문이다.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본다.  


캐나다에서 의료비 지출규모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를 수 있다. 혹자는 "무상 의료"라고 말한다. 분석가들은 국민이 세금납부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의료 분야에 얼마를 지출하고 있는지 계산해 보려고 한다. 가장 최근에 계산된 추산치를 보자면, 2018년 한해 동안 4인 가족 기준으로 평균 12935달러(캐나다 달러, 약 1155만원)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의료체계에는 추가적인 비용 요소가 있다. 바로 대기 시간이다.

2018년 한해 동안 약 108만명의 캐나다 국민이 필요한 치료를 적시에 받지 못하고 기다렸던 것으로 추산된다. 평균 대기 시간이 11주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수치는 심각한 것이다. 게다가 이 대기 시간은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은 후부터 기다린 시간이다.

이렇게 오래 기다려도 큰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대기 시간 내내 심각한 고통과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환자들은 시간 지체로 인하여 병세가 악화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

대기 시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을 조사한 최근 연구 결과를 보자. 대기 시간 통계, 임금 통계, 대기 시간으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겪은 환자들의 보고 등을 이용하여 추산한 결과, 임금 및 생산성 손실은 21억달러였다. 적시에 치료 받지 못한 108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평균 1924달러의 손실을 본 셈이다.

이것은 오로지 경제활동에 대한 영향만을 고려한 보수적인 추산치다. 경제활동 외에 주말과 저녁 시간에 고통 없이 취미 생활을 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시간까지 손실로 환산하여 계산에 포함시키면 손실액은 63억달러로 올라가며 1인당 5860달러가 된다. 수면 시간(8시간)과 처음에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기 위해 기다린 시간은 제외한 수치다.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하고 의사를 처음 만날 때까지 무려 8.8주를 기다린다.)

혹자는 보편적 의료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이 무작정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커먼웰스 펀드(Commonwelth Fund)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보편적 의료를 채택하고 있는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호주, 프랑스 등은 캐나다 보다 대기 시간이 훨씬 짧다. 2016년 자료를 보면 선택적 외과수술을 위해 18퍼센트의 캐나다인이 4개월 이상을 기다렸는데, 네덜란드는 4퍼센트, 프랑스는 2퍼센트, 독일은 0퍼센트이다.

당연히, 이러한 국가들은 보편적 의료를 다른 방식으로 운영한다. 캐나다와 달리 이 국가들은 민간 분야를 배척하지 않고 협력의 상대로 받아들였고, 활동실적에 따라 병원에 지원금을 제공했으며, 환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개인부담금을 적용했다(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면제). 반면에 많은 캐나다인들은 여전히 민간 분야를 보편적 의료의 반대 개념으로 간주한다. 병원에 대한 지원금은 정부에서 결정하여 예산으로 책정하며 환자에 대한 자기부담금도 부과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해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환자들이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막아서는 안된다. 다른 국가들이 이미 그 방법을 찾은 것은 분명해 보이며,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보편적 무상 복지가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고 한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세금의 형태로 연간 1천만원 이상을 의료체계 유지를 위해 헌납하면서, 아프면 의사 한번 만나려고 2개월을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려서 의사를 만난 후 실제로 치료를 받을 때까지 또 2개월 넘게 기다린다. 내가 아는 바로는 캐나다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아플때 아예 그냥 미국으로 건너가서 치료를 받고 온다.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이라고 그렇게 욕하는 동시에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를 늘리자고 주장하는 희한한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데, 정부를 운영하는 주체도 결국 다 똑같은 이기적인 사람이다. 국가가 책임져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국 공무원들에게 다 맡기고 싶다는 얘기가 된다. 믿을 사람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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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22497 (2018.12.10)

관련 기사는 여기로

대기업 정규직이면서 "나는 서민이고 피해자"라고 열변을 토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다 보니, 정말로 서민인지 아닌지 이리 저리 찾아보다가 발견한 기사다. 대한민국 월급쟁이 총 1544만명의 연봉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웠을 때 어떤 분포가 나오느냐에 대한 내용이다. 2016년 기준이므로 현재는 조금 다를 수 있겠으나, 아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주요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2016년 기준으로, 연봉 상위 10%에 속하기 위한 하한선은 6607만원이다. 대기업 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6521만원.

연봉 3776만원 이상이면 상위 30% 안에 들어간다. 중소기업 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3493만원.

딱 중간인 50%에 걸리는 연봉은 2623만원이다.

전체 1544만명중에 연봉 4000만원 미만인 사람이 1122만명이다.

연봉의 차이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 전문적이고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더 열심히 일하고 좋은 실적을 내서 승진을 하고 상여금을 많이 받고 하는 정도가 사람마다 회사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 잘 나가는 회사가 돈도 많이 주고 우수한 인재가 몰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는 경우는 대기업 정규직이면서 "자본주의의 폐단 때문에 자신은 착취당하고 있으며, 서민을 위해 분배정의를 바로세워야 한다"고 화를 내며 열변을 토하는 경우다. 그러면서 정말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도 서민"이란다. -_-;;

연봉 상위 10% 안에 들어가면서도 자신이 부당하게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따라서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 또한 자신이 서민이라고 생각하므로 기부나 자선활동에도 인색하다.

자기보다 더 벌고 잘 사는 놈들은 도둑놈들이라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심지어 이것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분노"라며 정당화한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싫다면서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관심은 엄청나게 많다 -_-; 아마도 자신보다 못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는 관심 없이 그냥 주변에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니까 오직 그것만 보면서 질투심을 불태우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 위의 통계 자료를 보면서도 감사하다/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결국 불행한건 자기 자신과 그 가족들이다.

회사 생활 좀 해 본 사람은 다들 알 것이다. 같은 직책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를 해도 어떤 사람은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농땡이 부리면서 겨우 시키는 것만 한다. 지금까지 사회생활 하면서 많은 사람을 봐 왔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중에 성실하고 일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하긴, "나는 착취당하고 있다"면서 불만에 차 있는데 일을 열심히 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 -_-; 이렇게 해서는 뭘 해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성공하기 어렵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머리속 꽃밭에 있는 나만의 이기적인 유토피아와 비교하면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화를 내는 것은 비추천이다. 인간이 전지자가 아니므로 세상은 복잡하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모두에게 완벽한 공평함은 그냥 허상이다. 내 기준의 "공평"이 다른 사람 기준의 "불공평"인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사회의 부조리를 논하기 전에 내 집안의 부조리와 갈등을 해결하는 것부터 도대체 얼마나 쉬운지 한번 생각해 보자.

사는게 팍팍하고 쉽지 않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사는게 땅 짚고 헤엄치기였던 시대나 장소과 인류 역사상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불과 200년전까지 세계 인구 대다수가 극빈층이었다(1820년 기준으로 총 11억명중에 극빈층이 10억명 이상).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다는 얘기다. 세상은 예전에도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으며,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쉽지 않은 세상인데, 피해자 행세하면서 남의 탓만 하면서 징징거리는 것보다는 스스로 노력하면서 어려움과 맞서는 편이 훨씬 낫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고마운줄 모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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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면 이글루에서 백업 - http://bahndal.egloos.com/621752 (2018.11.19)

 

https://youtu.be/9P-VlgO1s8g

 

예전에 조던 피터슨 교수에 대해 게시했던 글에서 링크했던 유튜브 동영상의 마지막 부분을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번역을 해서 한글자막을 추가해 놓은 동영상을 발견했다. Speakers Action Group이라는 단체에서 주관한 강연회에서 얘기한 내용이다.

강의 전체에 대한 한글 자막은 없는 듯하나, 어쨌든 가장 핵심적인 결론 부분을 번역한 것이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주제가 잔뜩 들어 있다. 왜 인생이 힘들고 세상은 부조리한가에 대해  한번이라도 고민해 본 적이 있다면 강력 추천.

원본 동영상(해당 강의 전체)는 아래에서 볼 수 있다. 한글 자막은 없다.

 

https://youtu.be/aDRgMUoEvcg

 

유튜브에서 "조던 피터슨 자막"으로 검색해 보니, 한글 자막을 추가한 영상이 의외로 꽤 많이 있다. 국내에서도 생각보다 인지도가 좀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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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반달가면